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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작성자
ekca
작성일
2021-05-11 21:14
조회
9945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유럽에서 나치의 패배는 결정되었다. 언제 항복할 것인지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연합군은 나치군을 격파하고 진격을 시작했다.



위급하고 절망적 상황에서 8월1일 히틀러는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을 프랑스 군정장관 겸 파리 방어 사령관에 임명했다. 파리 함락이 다가오자 히틀러는 파리를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연합군에게 잿더미 외에는 남겨주지 말라.”



콜티츠 장군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나폴레옹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에 2톤, 노틀담 성당에 3톤의 폭약 등 파리 문화유적 곳곳에 폭약을 장전했다. 그러나 콜티츠 장군은 히틀러의 명령에 따를 생각이 없었다.



콜티츠 장군은 전범재판에서 “히틀러를 배신할지 언정 인류를 배신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콜티츠 장군은 히틀러 같은 미치광이에게 독일의 운명이 걸려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고 전한다.



히틀러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묻는 전화를 콜티츠 장군에게 9번이나 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나중에 르네 클레망 감독이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를 제작할 때 영화제목이 되었다.



콜티츠 장군은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하고 레지스탕스와 협상을 한다. “파리 폭파 하기전에 파리를 해방시키라.”고. 협상 과정은 숨막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연합군 수뇌부는 파리 해방보다 라인강 전선을 돌파해 독일로 진격하려고 작전을 세웠다. 소련군 보다 베를린을 먼저 점령이 해야 소련의 유럽 팽창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골의 자유 프랑스군은 연합군 수뇌부를 설득하는 막중한 일이 주어졌다. 레지스탕스는 대부분 공산주의, 사회주의 계열로 드골의 자유 프랑스와는 반목하고 소원한 관계로 드골은 레지스탕스 보다 먼저 파리를 해방 시켜야 했다. 드골은 파리 해방에 관해 연합군 수뇌부를 설득했다.



연합군의 도움없이 레지스탕스가 독일군과 맞선 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사기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독일군은 조직적으로 훈련된 실전으로 단련된 군대라 레지스탕스 단독으로 독일군을 제압하기는 불가능했다. 그것은 바르샤바 무장봉기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무모한 작전이었다.



콜티츠 장군은 17,000명의 병력과 함께 항복했다. 그 후 전쟁포로로 2년간 복역하다 석방되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전범이었으나 파리를 구한 공로로 전쟁범죄는 사면되었고 ‘파리의 구원자’ 라고 불리운다.



콜티츠 장군은 왜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했을까? 인류를 배신할 수 없다는 숭고한 정신에서 그랬을까?



그보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앞섰다. 패전은 이미 결정되었는데 파리를 파괴한 무도한 행위가 나중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그는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는 슐레지엔의 귀족 출신으로 1차대전 때 장교로 참전했다. 그때 히틀러는 상병이었다. 귀족가문 출신으로 천년 고도이자 유럽인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파리를 파괴하는 야만적 행위에 동의할 수 없었겠지.



기록은 말하고 있다. 콜티츠 장군이 레지스탕스에 항복 직전 독일에 있는 부인과 통화하면서 “양심과 소신에 따랐다.”고



1966년 전쟁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나치 장군 장례식에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참석해 ‘파리 구원자’의 마지막 길을 전송했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지만 ‘그때는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는 상황논리보다 소신과 양심에 따라 부당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는 용기도 군인의 덕목이다.



콜티츠 장군과 비슷한 경우가 6.25 때 있었다. 김영환 대령은 공비와 인민군의 소굴인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미군의 명령을 받았으나 8만 대장경이 소장되어 있는 해인사를 폭격할 수 없었다. 김영환 대령 편대는 폭격대신 기총소사 로 위협사격만 가했다.



그후 명령위반으로 군법에 회부되었으나 팔만대장경을 구한 공로로 나중에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르네 클레망(Rene Clement) 감독은 ‘태양은 가득히’로 유명세를 누린 감독이다. 태양은 가득히 외에도 전쟁을 배경으로 남녀 꼬마의 이야기를 그린 ‘금지된 장난’ ‘파리는 안개에 젖어’ ‘철도전쟁’등 자유와 평화를 화두로 영화를 만들었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의 음악은 모리스 자르(Maurice Jarre)가 맡았는데 모리스 자르는 닥터 지바고,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 대작의 음악을 맡은 영화 음악계의 거장이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에서 3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5.18 때 신군부의 민간인 학살 명령에 복종해 민간인을 학살한  최세창 3공수 여단장, 7공수 신우식 여단장, 11공수 최웅 여단장을 군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2. 자유프랑스처럼 우리도 광복군이 연합군 도움 받아 일본군 몰아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3. 1차대전 영웅 앙리 패탱은 아름다운 파리가 전쟁 와중에 파괴 되는 걸 피하려고 나치에 항복했다. 콜티츠의 항복은 찬양받고 패탱의 항복은 반역행위로 지탄 받아 무기 징역 선고받고 감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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