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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4일, 우크라이나 전쟁 1년 되는 날

작성자
ekca
작성일
2023-02-15 21:45
조회
2311
2월24일이면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하 우-러 전쟁)이 시작된 지 1년되는 날이다. 1945년 5월8일 독일이 무조건 항복하고 76년 9개월만에 유럽에서 국지전이 아닌 대규모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작년11-12월부터 전쟁설이 불거졌다. 그럴 때마다 푸틴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고 미국 쪽에서는 불길한 뉴스가 계속 흘러나왔다.
전쟁(푸틴은 특별군사작전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러시아에서는 이 특별군사작전을 전쟁이라 부르면 형무소 간다. 그런데 푸틴도 요즘 전쟁이라는 표현을 가끔 사용한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되었다.

러시아와 군사전문가들 예상은 전쟁 30분이면 우크라이나가 초토화되고 3일이면 수도 키이우가 함락되고 꼭두각시 친 러 정권 세우고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 전리품으로 우크라이나 국토의 20%는 러시아가 점령하고.

초기에는 미국도 유럽연합(이하 나토)도 우크라이나 도울 생각이 없었다. 질 게 뻔한 전쟁을 도와 줄만큼 나토가 어리석지는 않다.
그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암살당할지 모르니 피난처를 제공하겠다.”는 정도의 호의만 베풀었다.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은 코미디처럼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 정보당국의 도움으로 여러 차례 암살을 모면했다.

미국과 유럽의 무기지원

3일이 지났는데 키이우 점령은 고사하고 러시아 진격은 지지부진했다. 우크라이나 항전의지가 예상 밖으로 강력하기는 했지만 세계2위의 군사대국 러시아가 군사력 25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상상외의 졸전을 거듭해 전문가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나토는 도와주겠다며 방어용 무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이 공급하기 시작한 대표적 방어무기다. 재블린 한발이 미화 8만불이라니 상당히 고가다. 그런데 8만불짜리 재블린으로 몇 백만 불짜리 러시아 탱크를 수없이 날려버리니 상당히 남는 장사다.

우-크 전쟁에서, 이 전쟁 외에 모든 전쟁이 마찬가지인데 전황 발표할 때 우리 피해는 경미하게 상대 피해는 과장되게 발표한다.  그런 걸 감안해도 이번 전쟁 중에 탱크 무용론이 생겨날 정도로 재블린의 뛰어난 활약으로 성능은 충분히 검증되었다.

순차적으로 방어용 무기부터 제공하더니 지난 여름엔 공격용 무기가 제공되어 9월 대공세로 우크라이나는 남부전선에서 헤르손을 해방하는 등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다연장 로켓 시스템 하이마스는 게임 체인저로 불릴만큼 뛰어난 활약을 했다. 다만 러시아 본토 공격을 못하게 기능 일부를 변경했지만.

여태까지 전비는 얼마나 들어갔을까? 12월 기준으로 미국이 쓴 돈이 약 650억 달러, 유럽연합이 쓴 돈이 약450억 달러, 합이 1,100억 달러다. 그 중 무기에 들어간 돈이 미국이 약 270억 달러, 유럽연합이 100억 달러 정도로 총 370억 달러의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인도되었다. 미국 일년 국방 예산이 약 8,000억 달러 정도, 그러니까 일년 국방비의 약 4% 정도가 들어간 셈이다.
러시아 전비는 1,100억 달러를 훨씬 상회한다.

전쟁의 핑계,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푸틴은 전쟁 시작 전부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경고했고 돈바스 지역의 우크라이나 극우민족주의 세력을 나치 잔당이라고 지목하며 척결을 다짐했다. 이번 전쟁의 원인으로 이 두 가지 이슈가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1991년 소비에트 연합(소련)이 무너지자 독립한 동유럽 국가들은 앞 다투어 나토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발트3국(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가 가장 먼저 1995년 나토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러시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면서 강력 항의하며 분개했다.

발트 3국의 반 러시아 감정은 우리가 일본,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보다 심하다. 반 러시아 감정은 구 소련 공화국들의 공통적 감정으로 러시아에 대한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1999년과 2004년, 두 번에 걸쳐 10개국이 단체로 나토에 가입했고 2009년 두 나라가 더 가입해 현재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스탈린의 고향)만 비 회원국으로 남아 있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직후인 1992년부터 나토 가입을 서둘렀다. 그러나 미국이 “임자는 나토 가입보다 핵무기부터 해체하라.”고 권했다. 러시아도 핵무기 해체를 거들었다. “앞으로 괴롭히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 유럽 최빈국 중에 하나이자 부패지수 유럽 최하위 우크라이나가 세계 3위 핵 보유국인데 핵을 관리할 만한 능력이 없어 엉뚱한 곳으로 핵이 유출될 가능성이 불 보듯 뻔해 전 세계에 우환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할 수 없이 부다페스트 각서인지 뭔 지 휴지로도 쓸 수 없는 종이에 서명을 했다.
우크라이나 그루지야는 2008년 나토에 가입할 뻔 했는데 이에 분개한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해 영토의 20%를 점령 하고 그루지야가 3일만에 항복해 강제로 평화협정을 맺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루지야 전쟁의 판박이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 후에도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 가입과 나토 가입을 헌법에 명시할 만큼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회원국 모두의 동의를 얻지 못해 차일피일 하다 러시아의 침략을 당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원하는 이유는 러시아의 팽창주의가 주는 위협 때문이다. 이 위협은 우크라이나 외에 과거 모든 소련 공화국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문제인데 러시아에 호되게 당하지 않은 공화국들이 없으니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발트3국이 나토 가입신청서 낼 때인90년대 중반만 해도 나토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러시아를 자극할 일이 아니라 러시아가 착한 곰(good bear)이 될지 나쁜 곰(bad bear)이 될지 두고 보자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발트 3국은 1995년 가입 신청서 내고 10년이 지난2004년에 가입이 승인되었다. 관찰 결과 러시아는 좋은 곰이 아니었다.

동 유럽 나토 가입과 러시아 입장

2차 대전 후 나토가 결성될 떼 그들에게 선지자적 혜안이 있어 다가올 동서 냉전을 예상해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련이 나토에 위협을 느껴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결성되었다. 나토에 대응하는 공산권 집단안보체제인 이 기구는 1955년 결성되었다 소련이 해체 직전 같이 해체되었다.

러시아 극우주의자들은 독일 통일, 바르샤바 조약기구 해체, 소련 해체 등 소련 주도의 동서 해빙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가 서구세계에 뭘 바라고 조건 제시한 것 있었냐? 우리는 선의를 베풀었는데 이제 와서 나토가 동진해 우리 안보를 위협하니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 너희들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 우리가 전쟁에 져서 무조건 항복한 것도 아니고.”라고 볼 멘 소리를 한다.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해체될 때 소련이 “우리가 먼저 해체할 테니 너희도 나토 해체하던가 규모를 줄이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 해체는 91년 7월 소련 해체는 91년 12월인데, 연방이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데 집단안보체제를 존속할 능력도 없고 존재할 이유도 근거도 없는 것이다.

고르바쵸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독일 통일을 목전에 두고 회담이 진행되며 대표들 사이에서 앞으로 평화무드가 조성되어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향후 군사력이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오고 갔다. “우리는 바르샤바 조약기구도 해체할 거야. 그래도 안전하겠지? 밀고 들어오면 안된다고.” “그럼 안전하지.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은 안 할 테니 맘 놓고 경제건설이나 하시라고.”

그런 말이 대표들 사이에 오고 갔지,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토의한 내용도 아니고 더구나 문서화된 내용도 없다. 그 당시 정황으로 볼 때 나토 동진은 피차 그런 정도로 넘어갈 사안이었지 러시아 극우주의자들 말 대로 선의를 베푼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 한 게 소련도 나토 가입을 시도한 적이 있다. 1954년인가 소련이 나토 가입 신청서를 냈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을까? 아니다,

나토 회원국들이 찬반으로 갈려 진지한 토론 끝에 가입이 거절되었다. “미안한데, 당신은 회원 가입이 안되겠어.” 그 이듬해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소련 역시 집단안보체제가 절실하게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속국이나 보호령으로 여긴다. 역사적으로 ‘키예프 루스’라는 공통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역사는 역사고 현실은 현실인데 푸틴의 ‘Great Russia’는 우크라이나를 중립화 시켜 완충지대로 두고 싶어한다. 이런 푸틴의 망상을 깨듯 우크라이나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 친 러 정권 내몰고 친 유럽 정권이 들어서 또 다시 나토 가입, 유럽연합 가입을 하려하니 2014년 무력으로 크림 반도를 점령해 러시아 영토로 선언했다.

크림 반도는 원래 오스만 터키 제국의 제후국인 크림 타타르 영토인데 1783년 러시아에 멸망해 크림반도는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그 후 1954년 소련의 후루쇼프가 서기장이 되면서 정치적으로 빚을 진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 관할권을 이양했다.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며 자연스럽게 크림반도도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60년만에 다시 영토를 되찾았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눈 뜨고 영토 도둑 맞은 격이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점령할 때 국제사회는 비난만 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배신감을 느끼며 다시 한번 국제사회가 얼마나 냉혹한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지킬 힘은 내가 갖고 있어야 하는구나.”
그후 우크라이나는 국방 개혁 계획을 세워 점진적으로 소련 군사체제에서 미국 군사체제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단숨에 무너지지 않고 항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의 일부도 국방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3일이면 끝난다던 전쟁이 곧 1년 된다. 현재 전황은 러시아가 주 특기인 포병 전력을 이용한 반격을 시작해 동부전선에서 우-러 모두 일진일퇴의 소모전을 벌이고 있으나 러시아가 전쟁의 주도권을 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전력을 가다듬고 있는 양측은 춘계 대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춘계 대공세가 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줘 종전의 계기가 될지, 휴전을 암중 모색하는 길고도 긴 소모전이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바람은 그 대답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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